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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랑 김주호 신장위구르 (우루무치 투루판 쿠얼러 쿠차) 실크로드 답사기

어랑 김주호 2025. 7. 16. 15:52


어랑 김주호 신장위구르  (우루무치 투루판 쿠얼러 쿠차) 실크로드 답사기
https://youtube.com/watch?v=s2KkAU_ab8A&si=qdK218tEkiDkj5he

 

인천공항에서 서안공항까지의 거리는 1,600km이다.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거리는 2,100km이다.
오늘 비행기로 3.700km 달려 우후무치로 향한다.
서안에서 우루무치까지 육로로 이동한다면 거리가 3,200km이다.
인천공항 주차장에 주차하고 대한항공 비행기에 탑승한다.


인천공항 2청사 탑승구
인천공항~시안공항 가는 항로
시안공항 제3청사
공항식당 국수 한그릇으로 
시안공항 국내선 탑승 수속중
우루무치 행 비행기 탑승구
우루무치 공항 도착 

산들투어 전용버스  탑승
우루무치 도착 후 저녁식사
1일차 호텔도착


우루무치 국제 바자르(시장)를 먼저 들렀다. 들어가는 입구에 검색대가 있다.
이슬람사원을 중심으로 사막 색과 어울리는 벽돌로 지어진 고색창연한 건물 여러 동으로 형성돼 있다. 공안의 삼엄한 경계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왔다. 다양한 물건과 상인들의 이국적인 모습이 서역 최대 시장임을 알 수 있다.

천산천지(Heaven Lake of Tian shan/Tianchi)
마야산 풍경명승구(Maya Mountain Scenic Area)
마야산 3,056m


천산천지(Heaven Lake of Tian shan/Tianchi)
천산천지는 길이 2555㎞의 대장벽인 톈산산맥 안에 존재하는 호수다. 우루무치 동쪽으로 약 100㎞ 정도 떨어져 있는 톈산 산맥의 주봉 바그다봉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톈산산맥은 1년 내내 언제나 머리가 하얀 산이라고 해서 백산 또는 설산이라고도 불린다.
길이 3.3㎞, 넓이 평균 1㎞, 최고 깊이 105m다. 톈산산맥의 눈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천지 주변에는 침엽수림이 자라는데 이 침엽수림과 박격달봉의 만년설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마야산 풍경명승구(Maya Mountain Scenic Area)는 산악 지형이 특징이며 천지(Tianchi)에서 남서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산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산의 길이는 약 5km, 해발 3056m로 천지 주변의 10개 봉우리 중 가장 높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산암석림 중 하나입니다.마야산은 가파른 절벽과 수많은 돌봉우리가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말니가 줄지어 서 있는 것처럼 보이고, 올려다보면 수만 와트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눈부시며 놀라운 자연의 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 마야산의 기묘한 지형은 고대 빙하가 남긴 걸작입니다. 지질시대에 융기된 산들은 습곡의 구성이 다르고, 암석층의 밀도와 부드러움도 다르며, 바람과 달의 침식도 달라서 '말치의 불가사의'가 드러납니다.말치산(Horse Tooth Mountain)의 봉우리 바위는 마치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닮았다. 현지 카자흐족에 따르면 이곳은 바이의 목초지라고 합니다. 

마야산 풍경명승구(Maya Mountain Scenic Area)
마야산 3,056m


우루무치 시내를 벗어나 왼쪽으로 천산산맥의 보그다(博格達)봉 설산을 끼고 트루판을 향해 동남 방향으로 달린다. 
그리고 광막한 사막 속 수천 대(2100대 이상)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지대를 통과한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아시아 최대의 풍력발전단지'라고 하였다. 트루판은 해저 분지 지형이라 솥단지처럼 뜨거워 화주(火州)라고 불리지만 풍주(風州)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투루판의 바람은 유명해서 달리는 기차가 전복되는 사고도 일어날 정도라고 하니 거대한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한것이라고 한다.


고속도로는 차이워바오 호수(柴窝堡湖)를 지나고 염호(盐湖)를 지난다.
달반성(達返城) 평원을 지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진 촬영을 한다. 워낙 거리감이 있어 스마트폰  망원 렌즈로 몇장 찍은 것이다.

천산산맥은 지구에서 가장 험난한 산맥으로 불린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부터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까지 장장 2,500km가 되는 거대한 산맥이다. 산의 정상부는 만년설로 덮여 있으며 해발 5,000m~7,000m의 고봉들이 즐비하다.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넘을 수 없었다. 그렇게 천산산맥은 오래도록 신의 영역이었다.

중국은 이 곳에 땅을 파고 다리를 놓았다. 천산산맥은 이제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영역이 됐다. 중국 정부는 10여년간의 공사 끝에 1983년 9월 독로를 완공했다. 독고공로가 건설되며 신장자치구의 간 이동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하지만 위험한 공사로 인해 도로를 건설하던 중 168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고 한다.


천산산맥을 뚫고 고속도로는 투루판으로 도착한다. 투루판은 천산산맥의 보그다산(博格达山)과 줴뤄타산(觉罗塔山) 사이에 둘러싸인 분지로, 태양열이 솥단지를 달구듯 분지내 지형을 달구고 있다. 연 강우량 16mm, 증발량이 3800mm 라니 얼마나 건조한지 알 수 있다. 우루무치에서 3시간여 달려 투루판에 도착하여 식당으로 간다.
천산천지 하산 후 늦은 점심을 먹고 투루판으로 도착한지라 저녁시간이 이른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밤 9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저녁식사와 더불어 투루판 전통 민속공연이 이여진다
2명의 여성과 1명의 남성이 팀이 되어 흥을 돋구어 주었다.
호텔로 돌아와 투루판의 밤을 보낸다. 내일 일정을 기대하며 깊은밤을 보낸다.

신장의 뜨거운 보석 투루판(吐鲁番), 고창고성,
지하수도 카레즈.
베제크리크석굴,
쿠얼러 가는길


투루판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수도 우루무치에서 약 184km 떨어져 있다. 
투루판에 '고창고성, 지하수도 카레즈. 베제크리크 석굴' 등 많은 유적이 있다. 현재 투루판 인구는 70만 명이 넘는다. 타클라마칸 사막 중심에 거대한 현대식 도시가 만들어졌다. 두세 겹 겹겹이 심은 가로수 숲길 등 도시계획이 잘 된 초현대식 도시이다.
해발 -154m의 세계 2대 저지대, 믿기지 않는 기온, 그리고 달콤한 포도로 유명한 이곳은 지금도 수천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이자, 색다른 자연이 펼쳐지는 여행지이다.


 고창고성에 도착했을근처에30도 높은 기온이다. 관광객은 우리뿐이다. 고창고성은 서기 6세기, 7세기 '고창국'의 수도이고, 서기 9세기 이후는 위구르 왕국의 수도였다.
 고창고성 매표소 앞에 당나라 '현장법사' 동상이 죽창을 들고 우뚝 서 있다.
고창고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지었으며, 성곽의 길이가 5킬로이다. 
전동카트를 타고 폐허가 된 1400년 전 고창고성 유적을 둘러보았다. 불탑(佛塔)의 초창기 형태인 '스투파'는 외부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스투파(탑) 내부에 있던 불상은 이슬람교에서 우상숭배를 파괴한다는 명분으로 대부분 파괴됐다.
인도에서 시작한 스투파 양식은 중국, 한국으로 오면서 우리가 절에서 흔히 보는 아담한 '석탑'으로 변했다. 반면, 태국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소승불교 국가의 탑은 황금색을 입힌 거대한 '접시 모양 탑'으로 변했다. 
이슬람교가 쿠차, 투르판 신장에 15세기, 16세기 들어오면서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등 여러 종교는 모두 없어지고, 현재는 이슬람교만 유지되고 있다. 
서기 629년 가을 현장법사가 고창국 왕(국문태)에게 설법했다는 법당 유적은 최근에 복원하여 깔끔하다.


 화염산 아래 계곡에 유명한 '베제클리크' 석굴이 있다.
이곳 석굴의 중요한 벽화는 20세 초 독일과 러시아 도굴꾼이 거의 뜯어 갔다. 독일에 약탈해 간 인류사적 유물은 2차세계대전의 폭격으로 유실되었다. 6년 전 베제클리크 석굴을 갔었는데 남아 있는 부처상 눈은 이슬람교도에 의해 모두 훼손되어 있다. '마니교'의 중요한 벽화가 베제클리크 석굴에 남아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류의 종교적 유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현재 우리의 국립 중앙박물관에도 아스타나 고분 유물을 갖고 있다. 20세기 초 일본인 '오타니 탐험대'가 약탈해 온 아스타나 고분 벽화가 조선총독부를 거쳐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다. 아래 벽화는 중국인 창조 신화에 나오는 '복희와 여와'의 그림으로 몸 하반신은 뱀의 형상이고, 상반신은 '복희와 여와' 벽화이다.

 화염산 매표소 근처에 가보니 높이 20미터의 긴 장막으로 화염산을 가려 놨다.
돈 내고 입장권을 끊어서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만,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베제클리크' 석굴을 다녀오면서 10분이면 가는거리를 공사로 도로가 폐쇄되어 빙글돌아 1시간여를 낭비하는 바람에 우리는 울타리 밖에서 사진 한장찍고 간다. 


화염해은 투르판 분지 중부에 걸쳐 있는 동서 100Km, 남북 10Km, 평균 해발 500m의 산지로, 가장 높은 곳은 勝金口付根으로 851m에 달한다.
지반의 습곡운동에 의해 습곡이 진 붉은 산은 여름철이 되면 지표에서 피어오르는 열기 때문에 타오르는 것처럼 보여 화염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특히 이 화염산은 손오공의 활약으로 유명한 [서유기]에도 등장한다. 현장법사(삼장법사)와 그 일행은 활활 타오르는 화염산을 지나기 위해 그 불을 끌 수 있는 파초선(芭蕉扇)이란 부채가 필요했다. 그 때문에 파초선의 주인인 철선(鐵扇)공주와 싸운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화염산은 여름 최고기온이 48℃나 되고 지표면 온도는 70℃를 넘어가기 때문에 계란을 모래에 묻어놓아도 삶아질만큼 중국에서는 제일 무더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해수면 이하 저지대가 투루판 면적의 80%가 넘는다. 세계에서 가장 저지대인 해저 150미터의 땅도 투루판에 있다. 저지대는 매우 건조해서 '증발 지수'가 매우 높고 혹서의 무더운 날씨를 만든다. 수로를 지상으로 만들면 물이 투루판에 도착도 하기 전에 전부 증발한다.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포도
길이 10km,폭은 500m인 포도밭 골짜기(葡萄溝<푸타오꺼우)를 일년에 16mm정도 내리는 척박한 투루판의 고비사막 위에다 일구어냈다는 사실은 인간의 힘이 정말 대단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포도밭의 한 농가 주인집을 방문했다. 품질이 아주 좋은 건포도를 사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위그르인들의 전통무용과 노래를 감상할 수가 있었다.

'카레즈'는  지하 10미터 깊이에 수로를 파서 연결한 수로의 전체 길이가 5천 킬로라고 한다.
기원전 7세기 이란으로부터 기술을 들여와 수천 년 동안 땅속에 수로를 판 셈이다. 지금도 계속 지하 수로를 보수해서 포도 재배와 농업용수로 사용함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중국인들은 "만리장성, 대운하, 카레즈 지하수로"를 3대 토목사업이라고 자랑한다. '카레즈'는 중국이 만든 것이 아니고 이란계 민족과 위구르족이 만든 것이다.


천산산맥을 넘어간다.
해발 1700미터의 험준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조심스럽게 달린다.  90도 직각으로 꺾인 절벽 길을 화물차는 굼벵이처럼 느리게 달린다. 광대한 사막의 지형과 모양도 매우 다양하다. 옛날 실크로드 상인과 구법승들이 사막의 높은 산맥과 협곡을 넘어올 때 고난이 상상된다.
 수십 킬로의 긴 '협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연상된다.

실크로드 산투투어, 투루판 천산산맥 386km 넘어 쿠얼러 약 500km 달린다.
공사구간은 20km 구비길은 40km 곧은길은 60km 속도이다. 해발 1700미터의 험준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조심스럽게 달린다. 90도 직각으로 꺾인 절벽 길을 화물차는 굼벵이처럼 느리게 달린다.
광대한 사막의 지형과 모양도 매우 다양하다. 옛날 실크로드 상인과 구법승들이 사막의 높은 산맥과 협곡을 넘어올 때 고난이 상상된다.
수십 킬로의 긴 '협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연상된다.
위구르족이 많이 사는 '투루판, 쿠얼러' 등 서쪽으로 갈수록 고속도로에서 공안의 검색이 빈번하고, 강도도 높다. 열심히 속도를 내어 달려가면, 검문소에서 공안의 검문으로 짧게는 5분, 길게는 10여 분 잡아 놓는것 같다.

투루판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하여 중간에 두번 쉬고 식사까지 하면서 쿠얼러까지 약 500km 달려와 밤 11시에 도착하였다. 총 8시간 소요되어 호텔로 도착한 것이다.


혜초스님이 걸었던 실크로드의 관문
중국 쿠얼러 철문관(铁门关, Tiěménguān) 왕오천축국전 가는길

철문관 - 천산북로와 중로의 관문
쿠얼러의 철문관은 위진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당나라 때는 이곳을 지키는 관리와 병사들을 상주시켰다.
쿠얼러 - 지리적으로 신장성의 제일 중심부에 위치하며 인구 30만이 사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개도하와 공작하.(공작강)
톈산 산맥과 쿤룬 산맥 사이에는 중국 최대의 분지인 타림 분지가 있고, 타림 분지 안에는 중국 최대의 사막인 타클라마칸 사막, 타림 분지의 북쪽 가장자리에는 중국 최대의 내륙하천인 타림 강이 있으며, 타림 분지의 남서쪽 가장자리는 카라코람 산, 
카라코람 산의 주봉은 해발 8611m의  조골리 봉우리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봉우리이다.
카이두허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 바인궈렁 몽골 자치주 경내에 위치해 있으며, 톈산 남쪽 기슭 중부의 이롄하비르가산에서 발원하여 巴音郭楞 蒙古自治州 和静、焉耆、博湖 세 현을 거쳐 최종적으로 전국 최대의 내륙 담수호인 보스텐 호수로 흘러듭니다.
공작강은 보스텐호(수원은 카이두강에서 나온다)에서 발원하여 마침내 사막의 롭포에 이르렀다. 공작강은 铁门关峡谷을 관통하여 库尔勒市를 흐르며, 쿠얼러시의 산업, 농업, 경제의 생명선이자 库尔勒 주민들의 어머니 강입니다.

 < 쿠얼러 > 는 위구르어로 ' 바라본다 ' 는 뜻 이라는데 무엇을 바라보다가 도시 이름이 되었을까??
현지인들은 아마도 거대한  타클라마칸 사막일거라고 이야기 한다.

투루판 쿠얼러 사막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오아시스 도시만이 아니다. 
관개 시설을 활용해 사막을 과수원과 밭으로 일궈낸 이들이 있다. 그들을 만나 일손을 돕고 사막에서의 삶에 대해 배운다. 뜨거운 만남으로 가득했던 포도밭이며 달고나 배밭에 배꽃이 피어 장관을 이룬다. 친절한 버스 기사의 난내로 배밭에서 인증샷을 남긴다.


쿠얼러시 공작하(천) 공작강을 바라보며 실크로드의 관문인 철문관으로 향했다.
철문관은 실크로드에서 천산남로의 중요한 요충지로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진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다. 쿠얼러에서 20분 거리로 지금 남아있는 유적은 거의 없고, 성벽의 흔적만 남아있다. 
지금의 철문관은 최근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철문관의 흔적은 흉노가 서역을 다스리던 BC174년에 동복도위(僮僕都尉)가 수비를 했다는 첫기록이 있다. BC 138~119년 장건이 서역을 정벌하러 갈 때도 두번을 지나갔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재의 것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건설되었고, 당나라 때는 이곳에 관리들을 상주시켰다.

7세기 중엽 당나라의 고승인 현장의 여행기인 대당서역기와 8세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행로에서도 철문관을 거쳐 안국(安國)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13세기 전진파의 도사 장춘진인 구처기도 1220년 제자 18인과 함께 산동성에서 출발하여 철문관 등지를 거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은 그의 제자 이지상(李志常)을 통해 1권의 단편인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眞人西遊記)>로 편찬되었다.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철문관은 전면 보수중이라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 곳을 지나 서역으로 왕래했던 유명한 사람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반초나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 우리고 우리의 유명한 신라고승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던 혜초 역시도 이 길을 통과했던 곳이다. 그런데 한국인이라 홀대를 받아 이자리에 혜초는 없었다.


투루판 천산산맥 넘어 쿠얼러 386km 달린다.
공사구간은 20km 구비길은 40km 곧은길은 60km 속도이다. 해발 1700미터의 험준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조심스럽게 달린다.  90도 직각으로 꺾인 절벽 길을 화물차는 굼벵이처럼 느리게 달린다. 광대한 사막의 지형과 모양도 매우 다양하다. 옛날 실크로드 상인과 구법승들이 사막의 높은 산맥과 협곡을 넘어올 때 고난이 상상된다.
수십 킬로의 긴 '협곡'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연상된다.
현재의 신쟝위구르자치구에 해당하는 '서역'은 서방의 로마와 동방의 장안을 잇는 실크로드 무역의 중요 무대였습니다. 천산산맥과 곤륜산맥에 둘러싸인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를 중심으로 동서 문화교류의 길은 고대로부터 면면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이따금 지나는 묘지에서는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의 오아시스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행적을 생생하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등이 이 길을 통하여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반되었고, 인도의 불교도 역시 이 길을 통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전파되었다.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에 여행객으로 발을 디디면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이드북 첫머리에 신장의 면적이 166만㎢라고 적혀 있다. ‘일개 성의 면적이 대한민국의 16배가 넘는다고?’  누가 미리 알려줘서가 아니다. 우루무치를 벗어나 투루판 쿠얼러 쿠차를 여행하면서는 초원과 사막, 삼림과 호수, 도로변의 키 큰 가로수에서 오아시스 농업지대의 넓은 밭까지,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자연과 인공의 풍광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이렇게 거대하고 황량하지만,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는 절경이라니!’
그러나 신장에서 또 하나 놀랄 만한 것이 있다. 여행이 끝나가거나 아니면 여러 번의 여행이 쌓이면서 갑자기 불쑥 생각나게 되는것은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길가 상점에 있는 양꼬치는 한국에서 먹는 맛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행 중에 최상욱 교수는 양꼬치를 먹어 보자고 하여 즉석 양꼬치 맛을 보았다.  캔맥주와 양꼬치의 만남은 아직도 맛과 향에 머리속을 꽉 채워주고 있었다. 천산신비대협곡, 천산미스터리대협곡을 가려면 바삐 움직여야 되는데, 구간거리 카메라 때문에 가이드가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요리조리 카메라를 피해가며 곡예운전을 하면서도 시간을 맞출수가 없어 휴계소에서 빵을 사먹으며 점심을 해결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천산신비대협곡
천산미스터리대협곡
쿠처대협곡
천산신비대협곡, 천산미스터리대협곡은 쿠처대협곡이라고도 불린다
천산신비대협곡´으로 가는 길은 쿠차시내에서 70여km에 이른다. 쿠얼러에서 300km 달려와 지친 모습이 역력했으나 붉은 황토빛 산이 나타면서 탄성을 자아낸다. 기묘한 형태의 산은 이곳이 대협곡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한데 아직은 협곡의 언저리에 왔을 뿐이라고 한다.
 우기에만 강이 되어 흐르는 계절하(季節河)인 쿠차강의 밑바닥이 여기가 물길이구나 짐작된다. 눈앞에 펼쳐진 산자락은 풍화작용과 함께 물에 쉽게 녹아 흘러내릴 수 있는 점토질과 이암(泥巖), 역암(礫巖)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단단한 골격을 이루는 부분들은 남아 있고 약한 부분들은 씻겨 내려가 거대한 성채(城砦)처럼 혹은 수없이 켜 놓은 촛불에서 촛농이 흘러내리는 모양, 배추 잎사귀를 한 겹 한 겹 펴놓은 듯 다양한 형태의 경관을 연출한다.


대협곡의 속살을 구경하기 위해 매표소를 통과한다.
트레킹 입구지 안내판에 "천산미스터리대협곡은 쿠처대협곡이라고도 불리며, 관광지는 천산산맥 남쪽 기슭, 쿠처현도 북쪽 64km, 국도 217선[독고도로] 1025km 지점 북쪽, 쿠처강변, 평균 해발 1600m, 최고봉 2048m, 협곡 기후가 쾌적하고 햇볕이 잘 들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경치가 무한하다".


'그랜드 캐니언은 적갈색의 거대한 산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위구르어로 '붉은 절벽'을 의미 한다.
협곡은 남북 방향으로 끝이 약간 동쪽으로 굽어 있으며, 전체 길이는 3700미터로, 억만년의 바람과 비에 의한 침식, 산사태로 인해 형성된 보기 드문 자연 경이로움이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협곡안으로 들어가니 예사롭지 않은 붉은 산은 몸체에 수 없는 주름으로 몸을 움츠렸으며 산등성이는 주름 수 만큼의 뾰족한 봉우리들이 날카롭게 하늘을 찌르고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협곡의 좁은 길로 걸어들어 가는 이곳도 사실은 우기에 물이 흐르는 물길이다. 지금도 바닥은 얼음이 모래와 썪이어 마치 시멘트길로 보인다. 붉은 암석의 그늘과 햇볕이 드는 양지는 햇살에 의해 검은 색과 더 붉은 색으로 뚜렷이 대비를 이루어 딴 세상으로 인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행길에 즐거운이란 만들어 내는것이다. 지금이야 흔하디 흔한 실크옷이지만 그 옛날 실크옷을 한벌 입기가 그리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일행중에 옛 모습을 재현하는 퍼포먼스를 보녀주고 있다.
2시간여 트레킹을 마치고 쿠차시내로 들어간다. 우루무치 천산천지 투루판 쿠얼러 쿠차까지 여행길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쿠차, 키질석굴
구마라즙(鳩摩羅什)
한낙연(韓樂然)화가

실크로드 출발지는 신라이다
실크로드를 우리는 보통 중국 서안에서 로마로 가는 길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신라까지가 실크로드라고 한다. 서양 학자 중에서도 하우이시 교수 같은 사람은 티베트어로 된 문헌을 근거로 실크로드가 신라까지 이어진 길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라 왕족의 유물에서 로마제 유리잔, 실크로드 상인들이 그린 그림 등이 나왔으며 경주시에 튀르키예인들의 동상이 보이는 것이 인증인것이다.
실크로드를 따라서 수많은 불교 석굴(성전)이 건설되어 있다. 인도 아잔타 석굴에서 아프가니스탄, 투르판의 베제클리크 석굴, 쿠차의 키질 석굴, 중국의 4대 석굴(용문, 윈강, 맥적산, 돈황), 경주의 석굴암까지 실크로드는 불교 석굴이 곳곳에 많다.
"소륵(오늘의 카슈가르)에서 동쪽으로 한 달을 가면 구자국에 이른다. 안서대도호부가 있는, 중국 군사의 대규모 집결처다. 절도 많고 승려도 많으며 소승 법이 행해지고 있다. 고기와 파, 부추 등을 먹는다. 중국 승려들은 대승법을 행한다." 이렇듯 쿠차는 혜초가 <왕오천축국전> 중에서 유일하게 행적의 시간을 밝힌 곳이다. 그는 이어 당시 안서도호부 절도사가 조군(趙君)이며, 중국인 승려가 주지로 있으면서 대승법을 행하는 절이 두 곳밖에 없음을 전하고 있다.


혜초 따라가는길 실크로드 쿠차 행적을 찾아 떠난다.
호텔식 아침을 먹고 길 건너 아파트 단지를 들어가본다. 
인공호수를 만들어 폭포가 흐르고 나뭇가지와 꽃들이 피어 길손을 반겨주고 있었다.
인도에서 가장 가까운 서에 위치한 쿠차는 주변에 중앙아시아가 인접한 곳이다. 버스에 설치한 지도를 보며 여행길을 나선다.
한국에서 가져온 밑반찬이 남았다며 비빔밥을 만들고 있다. 아주 맛나게 먹었다.


쿠차에서 서쪽으로 약 75㎞ 떨어져있는 키질석굴로 달려간다.
인도에서 가장 가까운 서에 위치하였으며 중국의 4대 석굴로 칭해지는 키질석굴은 당연히 그 조성연대가 가장 빠르다는 말이 된다. 키질석굴은 서기 3세기부터 9세기에 걸쳐 조성되었고 막고굴보다 규모는 작다. 이곳에는 지금까지 확인된 석굴이 236개소이며 벽화가 남아있는 곳이 75개소, 발굴되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400개가 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인도의 어느 나라 재상이었던 구마라즙의 아버지는 나라가 망하게 되자 파미르 고원을 넘어 구자국으로 와서 왕의 법사가 되기도 한다. 

구마자즙, 불경 반야심경, 법화경, 금강경 등 번역 하였다
구마라즙(鳩摩羅什)은 일생을 불경 공부와 역경에 바쳐 현장, 법현스님과 함께 중국의 3대 역경승(譯經僧)으로 추앙받는 그가 번역한 불경이 반야심경, 법화경, 금강경 등 35부 294책에 이른다고 한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처음으로 조성된 쿠차의 키질석굴에는 '키질풍의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사진을 결단코 못 찍게 하는 관리인들의 마음에서 어떤 경계심 같은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는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벽화들, 그리고 떼어가려고 칼금을 넣은 흔적들이 벽화들을 지금이라도 잘 지켜보자는 의지일 것이라 생각을 한다.


한낙연(韓樂然) 화가의 만남은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깜짝 놀란일이다.
처음 들린 17호굴을 시작으로 6개의 석굴 중 이곳 석굴들의 벽화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마름모꼴 격자형태의 테두리에 불교설화를 그려 넣은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유물을 약탈해 간 키질속굴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 치유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국인(조선족) 화가였던 한낙연(韓樂然,, 1898~1947)이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어찌 한국인의 방이 있을까. 기적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았는데, 나만 몰랐던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해야 옳다.
그의 흔적은 지금도 선방으로 쓰던 10호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1919년 상하이의 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일어났던 3.1 운동의 영향으로 항일운동에 나섰던 그는 지하 활동을 하다 1929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1931년 파리 루브르예술학원에 입학하였고 졸업 후인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으로 돌아와 항일투쟁에 투신하였다. 
프랑스 유학당시 중앙아시아로부터 약탈되어 전해진 불교우적들을 보았던 그는 이후 키질 천불동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매료돼 실크로드 미술에 대한 연구와 키질 천불동 벽화 모사, 발굴 작업 등에 선구적 업적을 보였다. 1947년 벽화 모사를 위해 방문하고 돌아가다 항공기 사고로 가욕관 상공에서 연구결과물과 함께 아쉽게 산화했다.
한낙연 그가 기거했던 방에 난 작은 창문 밖으로 하늘은 푸르고 나무도 풍성한 봄날 한낮이건만 바람은 흙먼지를 일으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한낙연 선생의 체취가 지금도 남아 있는 작은 방에서 잠시 눈을 감고 그의 넋을 달래본다.
실크로드 길에서 만난 한낙연 화가를 만난것이 이번 여행길에서 가장 소중한 결과인 것이다.


몽둥이 들고 기관총 들고 초등학교 지키고 있어요
쿠차왕국 바자르(위구르족 전통시장)
위구르족의 전통 빵인 낭(馕)
산들투어 실크로드 투어단이 우루무치 투루판 쿠얼러 쿠차 5박6일 투어중에서 쿠차 왕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왕궁에는 마지막 공주가 살고 있다고 한다.

쿠차 왕국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727년 혜초 스님이 이 곳에 머물며 자세한 기록을 남긴 곳이다.
쿠차(위구르어: كۇچار) 또는 구자국(龜玆國)은 오늘날 쿠차 현에 위치하던 도시국가이다. 인도, 페르시아 제국, 박트리아와 실크로드 교역국들의 갈림길이었다.
 위구르족의 전통 빵인 낭(馕)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중심으로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전해져오는빵입이다. 위구르족은 원래 난(Naan)을 ‘헤멕(Hemek)’이라고 불렀지만 이슬람이 신장으로 확산 된 후 낭(馕)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난(Naan)이 삼각형 모양인 것과는 달리 낭(馕)은 피자 반죽처럼 둥근 형상을 하고 있다. 작열하는 태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기원한 것으로 전해지며, 타림강 주변의 유목민들이 휴대용 저장 음식으로 갖고 다니며 주식으로 먹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쿠차 초등학교 앞에서는 기관총, 방패막, 대형 몽둥이를 들고 등하교 하는 학생들을 지키고 있다. 누구를 위한 것이랴고 물었더니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것"이라고 말했다.
쿠차 왕궁에는 마지막 공주가 살고 있다고 한다


쿠차 공항에 도착해서 시안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4시간이 걸린다. 국내선이 국제선 보다 더 멀어...